성냥

아날로그

어제 친한 형들과 술마시러 갔다가 성냥 한갑 얻었다.

오늘 담배를 꺼내다가 생각나서 불을 붙여봤다. 익숙한 내음. 어릴적에 맡던 그 냄새다. 어릴적의 생각이 나면서 지금 애들은 성냥을 써봤을까 하는 생각이 들다가 썩소를 날렸다.

싫어하는게 나이를 좀 먹은 사람들이 지금 애들은 우리 그때의 재미를 알겠어. 식으로 일축해버리는건데 나도 곧잘 그런 생각을 가진다. 뭐 사람새끼란건 다 똑같으니.

정확한 답이 하나다. 혹은 여러개다

이 두가지 갈래로도 사람이 두 부류로 나뉘어진다. 정확한 답안이 있다. 혹은 없다로도 갈리겠지.  나라면 정확한 답안이 여러개라는데 한 표. 하나라면 세상이 재미없다. (자신의 가치관을 남한테 얹느라 안깐힘을 쓰다가 병신되는 일도 생기겠지.) 하지만 다양성을 인정하면 훨씬 복잡해진다. 답안이 하나라고 생각하면 대방이 거기에 동의하지 않을 때 관심끄면 되지만(혹은 상대방과 일치하게 하느라 불쾌해지고) 여러개라고 믿을 경우엔 그 사람을 그냥 포용해야 하는 불편함이 존재하고 다시한번 검토라는 자체가 무의미해지고 생각하기 조차 불쾌한 그림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역시 나도 답안이 하나라고 생각하는건가?… 그래도 다행인건 다양성은 단일성도 포용해준다. 오 그래 너는 그렇게도 사는구나 식은 포용속에 협애가 숨어있는거겠지.

이런것들때문에 내가 우유부단한 성격을 표출하는지도 모르겠다. 자아합리화를 위해서든 맞는 이치든 성격을 고친다는건 언제나 싫다. 더우기 충고를 가장한 참견과 잘난척앞에서는 더욱 굳건해진다.

나는 너의 그 어떤 정신나간 행동도 이해해주겠으니 너는 그냥 닥쳐라.

닥치기전에 토도 달지 말고 미리 닥쳐라.


나는 분류당하는게 싫다. 이유는 간단하다. “너는 병신이야” 라는 말이 비인간적이지 않는가? 혹은 “오라, 우리 병신들의 세계로” 라던가…

그러니까 분류가 우열을 나타내는 등급으로 돼버린 후였구나.

드래곤볼을 안보고도 재미있게 살아왔으니까.

세상은 이럴수도 저럴수도 있는거고 다들 제 멋에 사는게 아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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